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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원백자청화모란수자문호(진품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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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수자문호:높이10.3cm 구연부8cm 굽8cm 가로기준14cm정도 연대:조선시대(18세기말~19세기초)상분원(분원절정기) 상태:A급 수리1%도 없음 특징:분원갑번자기.입구 지름과 굽의 넓이가 동일한 비율 판매후 기한없이 진품보장환불 약속해드립니다 가품이면 번개장터에 올려진 제 모든물건 공짜로 드리겠습니다 >>>>>>>>>>>>>> 조선왕실 사옹원 분원가마 에서 제작된 도자기입니다 연대 좋고 아주 단정한 모습의 화문호(花文壺)이며 구연부아래로 뇌문을 중앙에 목숨수(壽) 자를 도안화하여 길상(복을바라는마음)의 의미와 장수의 기원 부귀영화의 상징인 모란문을 시문하였습니다 왕실도자기 에서 자주 쓰이는 문양입니다 불순물이 없게 정제된 태토에 갑발을 씌워 최고의 진상품 으로 제작되었습니다 갑번자기라 칭하며 그 흔적으로 굽 바깥쪽 으로 청화를 한줄더 감은 표식이 궁궐 내사용 이라 보겠습니다 특제 진상품 이라 보시면 맞겠습니다 아울러 굽바닥 면에 도공의 표식이 있습니다 이러한 표식은 제작 당시 가마터의 장인이 소유주를 구별하거나 수량의 확인,납품처를 표시한 흔적입니다 갑번자기 갑발로 검색해 보시면 이해의 도움이 되실 거예요~ 참고사진의 서울대박물관에 동일한 도자기가 있습니다 참고사진의 분원후기 즈음의 약호와 비교해 보시면 수입코발트 자체의 색감이 전혀 다름을 아실수 있으며 문양과 그림 또한 농담의 진하고 흐린 화공의 숙련도 의 차이도 느껴 보시라 비교해 찍어드렸습니다 상태 모기 물린곳도 없이 정말좋습니다 굽언저리의 약간 거무스름하게 보이는 일부분은 장작가마 번조시 연기가 조금 베인것이며~고古 도자기 를 수집 하시며 극예민 하신 선생님들 께서는 골동품 수집을 안하시는게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 세월의 흔적 사용흔적과 미세한 상처 정도는 그흔적 이야 말로 진품감정이 되는 증거입니다 박물관에 전시된 보물급도 1% 흠 없는것은 존재 할수 없다~그리 말씀드립니다 상분원 도자기 갑번자기는 예전에는 최하 3백이상 부르는게 가격이었습니다 >>>>>>>>>>>>> 분원기록은 '용재총화'에 '세종조부터 백자를 전용하였다' 라는 기록이 있어 세종 때부터 왕실에서는 분청보다 백자를 애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왕실의 백자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왕실용 백자 가마인 분원 관요가 세조 말 예종 초인 1467년 4월 이후 1468년 경 경기도 광주에 설치되었다 경기도 광주는 한양과 가깝고 당시에 최상품 백자를 구워 냈던 곳이었기 때문에 분원의 최적지였다 세종 때 본격적으로 시작된 경질백자는 문화적 안목이 높았던 세조 연간에 와서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나라에서는 전국의 백토를 조사한 결과 강윈도양구, 경상도하동,산청,진주 등지에세 양질의 백토를 찾아냈다 그리고 1467년(세조13년) 무렵에는 마침내 사옹원 에서 관용 백자를 직접 제작 하도록 경기도 광주 분원을 설치 하였던 것이며~ 사옹원의 분원이 설치되었던 경기도 광주 일대에는 무려 300여 개소의 백자 가마터가 산재해 있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는 가마를 대략 10년 주기로 땔나무가 모여 있는 곳으로 옮긴 결과이다~ 이렇게 약10년 주기로 이동한 위치를 보면 15세기는 우산리,도마리,16세기는 번천리,관음리,17세기는 선동리 가마가 대표적인 예이다~ 가마의 이동은 1752년(영조28년) 오늘날 분원리에 정착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갑발에 넣어 구운 백자는 왕실용 백자이고,조질과 중간 품질은 궁궐내 하위계층이나 중앙관청 혹은 고급관리 의 사용품 이었다 생각하십시요 왕정이 쇠퇴하는 말기 구한말 가까운 분원의 도자기는 전성기의 도자기와 품질과 예술성 에서 같은 분원도자기 여도 딱~보시기 쉽게~칙칙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쓸데없는 이상한 감정서에 현혹되지 마시구요 감사합니다

Secondhand condition is described by the seller. Korean delivery takes the item to our warehouse; international shipping is arranged separately after arriv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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